시장의 역사 (6)-미녀53
이번 글에서는 여러분도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실 유명한 헤지펀드인 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이하 LTCM)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LTCM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LTCM의 파산에 초점을 맞추어 거대한 레버리지의 위험성에 대해 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LTCM의 스토리를 단순히 차익거래를 위주로 하던 한 헤지 펀드가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바람에 파산하면서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라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비록 LTCM은 파산하였으나 LTCM이 사용했던 다양한 투자기법이 어떻게 차후 많은 투자은행에게 전수되었으며, 여태까지도 헤지펀드의 기본적인 기법으로 이용되고 있는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글을 통해 선진 투자기법이란 어떠한 것이며,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해보고, 글로벌 선도세력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6. LTCM의 역사와 차익거래 기법
LTCM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들이 주로 사용했던 전략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채권의 차익거래에 치중하는 헤지 펀드였습니다. 차익거래(ARBITRAGE)란 기본적으로 동일한 두 자산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벌어질 때 고평가된 것을 매도하고 저평가된 것을 매수함으로써 그 차익을 이득으로 취하는 무위험 거래(RISK-FREE TRADE)입니다. 우리가 흔히 프로그램 매매라고 부르는 것이 이러한 차익거래에 포함이 되는데 대개 주가지수 선물과 KOSPI200의 베이시스가 벌어질 때 그 베이시스를 먹기 위해 행해지는 거래를 우리 증시에서는 프로그램 차익거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가 차익거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만큼 큰 오해도 없을 것입니다.
시장에서 차익거래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LTCM이 한때 이러한 기법으로 엄청난 이익을 창출했다는 점은 시장에는 늘 비효율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금융기법에 대해 완전한 초보인 분들을 위해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라는 지역에서 개나타라는 자동차가 200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B라는 지역에서는 같은 개나타 자동차가 190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겁니다. 이때 똘똘이라는 녀석이 이러한 가격차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똘똘이는 B 지역에서 자동차를 매수한 다음 A 지역에서 매도함으로써 100만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거래를 차익거래라고 합니다.
부동산 경매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몇 차례 유찰되어 헐값에 나온 부동산을 낙찰받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차익거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이러한 공짜 수익의 기회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똘똘이 같은 녀석이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공짜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여. 그래서 전통 금융 이론에서는 시장에는 이러한 차익거래의 기회가 존재할 수 없고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워낙 찰나적이라서 지속적인 수익의 기회로 활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효율적 시장 가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수많은 차익거래의 기회를 찾아다니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시장은 상당히 효율적임에는 분명하지만 절대로 완전히 효율적이지는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가치투자기법 또한 결국 내재가치와 시장가치의 괴리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이라는 점에 베팅하는 모종의 차익거래임을 알고 계셨습니까? 가치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가치와 내재가치는 같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장의 비효율성 때문에 이 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적정주가로 평가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투자의 핵심입니다.
만일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가치투자도 소용이 없고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종류의 적극적 투자가 소용이 없어집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지속적으로 더 나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으므로 최선의 대안은 인덱스 펀드를 매수 후 영원히 보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개투들에게는 인덱스 펀드가 장기적으로 최선의 대안인 것은 맞습니다. 개투들의 대부분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포착하는 능력이 없으며 도리어 그 비효율성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도 세력들은 시장이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고무줄처럼 효율성으로 복귀하는 정상적인 구간에서는 수익을 얻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비효율성이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는 구간에서는 큰 손실을 입으며 그때부터는 스스로가 시장의 비효율성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어 시장을 교란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LTCM의 파산도 정확히 이러한 케이스에 해당됩니다.
여러분은 더이상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흐르는 순간을 틈타 한건 해먹기 위해 불법 작전을 펼치는 구시대 스탈의 조막손 세력들을 머리에 떠올려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의 진정한 선도세력은 대부분의 경우 비효율성이 아닌 효율성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LTCM은 여전히 많은 헤지펀드들이 구사하고 있는 다양한 차익거래 기법의 원조입니다. 이러한 차익거래 기법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고정 수익 차익거래(FIXED INCOME ARBITRAGE)
여기에 해당하는 차익거래로는 이자율 스왑 차익거래, 국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 차익거래, 장단 금리 스프레드 차익거래 등이 있습니다.
이자율 스왑 차익거래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은행이 CD금리 + 1%의 변동금리로 예금을 받아 5%의 고정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은행은 CD금리가 상승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이를 헤지하기 위해 스왑 딜러를 찾아 5%의 고정금리를 주는 대신 CD금리 + 2%의 변동금리를 바꾸는 스왑 거래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은행은 CD금리 + 1%로 예금을 받아 CD금리 + 2%로 대출을 해주게 되어 1%의 금리를 무위험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멍청한 스왑 딜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여.
국채-회사채 스프레드 차익거래란 국채 금리와 회사채 금리가 지나치게 벌어졌을 때 이 둘이 결국은 수렴할 것에 베팅하는 차익거래입니다. 경기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시장이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국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는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결국 종결되면서 스프레드가 축소될 것에 베팅하는 방법입니다.
장단 금리 스프레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채권의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졌을 때 이 차이가 좁혀질 것에 베팅하는 기법입니다.
2) 짝짓기 차익거래(PAIRS TRADING)
짝짓기 차익거래란 본질적으로 같거나 유사한 두 종목 간의 가격 괴리가 발생할 때 그 괴리가 해소될 것에 베팅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보통주보다 삼성전자 우선주가 더 크게 올랐을 때, 이 격차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삼성전자 우선주를 공매도하고 삼성전자 보통주를 매수하면 됩니다.
이러한 짝짓기 롱숏 전략은 동일 업종의 유사한 종목들 사이에서도 행해질 수 있습니다.
3) 통계적 차익거래(STATISTICAL ARBITRAGE)
통계적 차익거래란 본질적으로 짝짓기 차익거래에서 유래한 방법으로 특정한 변수를 기준으로 하여 종목 포트폴리오를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변동성이 과도하게 증가한 종목군과 감소한 종목군을 서로 다른 두 개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하여 변동성이 큰 포트폴리오는 매도하고 작은 포트폴리오는 매수하는 식입니다. 결국 변동성은 평균 회귀 현상에 의해 두 포트폴리오 모두 비슷해질 것이라는 점에 베팅하는 것이지여. 통계적 차익거래는 그 본질상 계산을 요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의한 분석 없이는 사용되기 어렵습니다. 하기사 오늘날 대부분의 차익거래는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여.
LTCM의 설립자는 과거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의 부사장이자 채권 트레이딩 팀장이었던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입니다. 그는 하급자였던 폴 모저(PAUL MOZER)가 재무부 당국에 허위 보고를 한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오랜 기간 일했던 살로먼 브라더스로부터 해고되면서 헤지 펀드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본래 함께 일했던 채권 트레이딩 부서를 살로먼 브라더스로부터 빼내고 1997년 블랙-숄즈 옵숀 가격 결정 모델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FRB 부의장 데이비드 뮬린스(DAVID MULLINS) 등을 영입하게 되지여.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된 드림팀은 국제적인 금융기관과 큰손들로부터 12억 5,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1994년 2월 출범하게 됩니다.
LTCM는 1995년에는 59%, 1996년에는 57%의 엄청난 수익율을 올리며 출범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수학적 모델과 이론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25:1에 달하는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과 1조 2청 5백억 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 포지션을 유지했습니다. 차익거래란 본래 아주 작은 무위험 수익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LTCM은 1997년에도 전년도의 수익율에는 못 미치지만 원금의 크기를 고려하면 여전히 엄청난 25%의 수익율을 기록합니다. 이쯤 되면 그들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신화를 개척했다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신에서부터 조금씩 싹트고 있었습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각종 채권의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하기는 커녕 더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일본과 유럽 국채를 팔아 미국 국채를 사러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진 콜을 당하게 되었고 증거금을 내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다른 차익거래 포지션들을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면서 청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펀드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억 8,5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LTCM에 결정타를 날렸던 것은 1997년 여름에 구성한 ROYAL DUTCH SHELL이라는 이중상장기업(DUAL LISTED COMPANY)에 대한 차익거래 포지션입니다. 이중상장기업이란 결국 서로 다른 주주그룹을 가지고 있는 동일한 기업이므로 그 주가가 종지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포지션이 결국 수익을 내주기 이전에 청산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ROTAL DUTCH SHELL의 프리미엄이 22%나 증가한 것으로 보아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LTCM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포지션 또한 지급 불가능 사태에 빠지게 되어 LTCM에 투자한 금융권의 연쇄 파산의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골드만 삭스, AIG, 버크셔 해더웨이가 LTCM을 2억 5천만 달러에 매수하고 3억 7,500만 달러를 주입하여 골드만 삭스의 한 부서로 두기로 제안하지만 LTCM은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뉴욕 연방 준비 은행이 나서서 다양한 투자은행들로부터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사태를 종료하게 됩니다.
LTCM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여?
모두 말하듯 과도한 레버리지가 한 가지 요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와 같이 엄청난 레버리지를 겁없이 차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시장이 결국은 효율성으로 회귀한다는 지나친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전통 금융 이론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주로 학계의 천재들로 구성된 LTCM의 트레이딩 팀은 때로 시장은 효율성으로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멀어질 수도 있으며, 이러한 비효율성 및 시장 불안정성은 예측치 못했던 사건(이를테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에 의해 촉발될 수도 있음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LTCM은 분명 베어링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닉 리슨의 사건이나 그 외 유사한 금융 사건과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LTCM의 투기는 철저한 계산 하에 진행되었고 3년 이상 눈부실만한 실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이론과 계산을 지나치게 과신함으로써 가격간의 괴리에만 신경을 썼지 자신들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괴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라면 어떠한 기법을 통해 연속적인 수익을 달성하게 된 후 그 기법을 점차 과신하게 되고 거만해지면서 과도한 베팅을 감행하다가 큰 손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 또한 이러한 순간을 수많이 경험해봤습니다.
시장이란,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실체가 변해버리는 이상한 생명체입니다.
시장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비효율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비효율적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적어도 현재까지의 역사를 보면) LTCM의 투자철학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으며 바로 이러한 점이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해 그들을 추락시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용했던 전략들은 오늘날 이용되고 있는 다양한 차익거래 전략의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비록 실패하였으나 이론적으로나 실제 투자세계에서나 많은 기여를 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금융 세계는 점차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도 개투들은 여전히 외국인이 이 종목을 샀으니 올라갈 것이라는 등의 너무나도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시장은 더 이상 그렇게 천진난만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선도세력은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바닥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며 상대적으로 도태되고 있는 것은 영원한 봉인 개투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개투들이 이러한 점을 조금이나마 인식을 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으면 합니다.